유년의 기억은 평생의 에너지다
기억을 더듬어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점점 기억이 희미해지다가 어느 때가 되면 아스라이 안개처럼 뿌옇게 사라지고 만다.
인간의 기억은 몇 살 때부터 유지될 수 있을까? 한 살 때 일을 선명히 기억 하노라고 장담하는 사람을 만나 적이 있다. 참으로 대단한 기억력이다.
그런데 난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네 살 이전의 기억은 도무지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게 정말 있었던 일일까 싶은 희미한 편린 몇 조각이 가물가물 떠오르긴 하지만....
내 고향은 강원도 태백이다. 주위가 온통 산과 들판, 시냇물, 나무, 풀, 야생화, 나비, 잠자리가 시야를 가득 채우는 곳,
당시만 해도 탄광이 극단적으로 개발되지 않아 심심산골의 청정지역을 유지 하고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서울로 진출 했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서울에서 살았다.
그리고 삶이 해괴하게 흘러가더니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글쟁이가 덜컥 되었다.
지금까지 소설 49권 만화스토리 1800권 애니매이션 3편 문화스토리텔링 17화 등 온갖 잡다한 글들을 그야말로 엄청나게 써 댔다.
요즘도 가끔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그 많은 작품들을 어떻게 창작할 수 있느냐고....
단언컨대, 정말이지 단언컨대 내 작품의 근원은 일곱 살 이 전의 추억을 간직한 내 고향 태백에서 출발한다.
네 살 때부터 눈으로 보며 몸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가득 품었던 고향의 기억들이 나에게 끊임없는 창작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가슴 한켠이 짠해지고 그윽한 향수로 나를 침잠시키는 기억 한 가지가 있다.
다섯 살 때였다.
눈만 뜨면 냇가로 달려가 가재잡기에 여념이 없던 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들판에 피어 있는 참나리를 꺾어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참나리를 받으며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시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엄마가 참나리를 무진장 좋아하시는구나!
다음 날, 나는 어머니가 그토록 아끼시던 가위를 몰래 가지고 들판으로 달려가 참나리를 꺾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
그런데 좀 더 예쁜 참나리를 꺾고 싶은 욕심에 들판을 한정없이 헤매다 그만 해가 꼴까닥 저물어 버린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난 무서움에 질려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위는 온통 잡풀이 무성하여 도무지 방향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섯 살 아이의 지혜로는 집을 찾아간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 했다.
그런데 문득 평소 어머니가 당부했던 말이 생각났다. 만약 길을 잃거든 냇물을 따라 올라오라던....
나는 울면서 냇물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다리가 아프면 바위에 앉아 한참을 울다 또 걷고, 아마도 두 시간 이상은 족히 걸었을 것이다.
배도 고프고 지쳐 그야말로 터덜터덜 걷는데 저만치 어둠속에서 누군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차츰 가까이 가자 그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며 그 어둠속에 서 계셨던 것이다.
난 복받치는 반가움에 와앙 울음을 터뜨리며 어머니를 향해 달려 갔다. “엄마!”
그런데 달려가던 나는 어떤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길을 잃은 정신에 가위를 잃어버린 것이다.
어머니가 그토록 아끼시던 가위를...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손에는 참나리 다발을 놓치 않고 쥐고 있었다.
난 가위를 잃어버려 꾸중을 들을까 싶어 재빨리 참나리 다발을 내밀며 달려갔다.
딴에는 아부를 해서 꾸중을 피하려는 영악한 계산으로.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나를 꼬옥 안으셨다.
난 그때의 어머니 체온과 느낌을 평생 잊지 못한다.
그래서 작품을 쓸 때 갈등 구조에서 상대를 용서하는 상황을 구사할 때면 그 날의 감정을 끌어올려 해결한다.
한 마디로 유년의 기억이 평생의 에너지가 되어 주는 것이다.
추억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매우 고급스러운 개인재산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자녀들에게 모두가 탐낼 재산을 물려주고 싶다면 삶에 에너지가 될 수 있는 기억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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